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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의 역사(고대,그리스로마)

by 빵9남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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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가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고대 전통사회에서도 여가현상은 존재하고 있었다. 인류가 이동, 수렵의 단계에서 농경을 위주로 하는 정착사회의 단계로 옮기면서 계층 간 여가의 분배와 이용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으며, 여가는 예술 ·문화 ·놀이 ·여행 ·축제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인류사회의 역사는 여가를 통해 발전하여 왔으며, 인간생활의 여러 측면과 결합하며 끊임없는 변화가 수반되었다.

 따라서 본장에서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시계열적 분류로 세계의 여가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 여가역사에 대한 접근은 학자마다 그 견해를 달리하고 있으나, 원시시대를 고대사회 범주에 포함시키고, 인간문화 발상의 기초인 농경시대를 그리스 ·로마 시대로 대별한다. 또한 중세시대와 교육여가의 대표적인 르네상스시대, 그리고 근대와 현대로 구분한다.

 

 

1. 세계의 여가 발전사

 

고대사회 → 그리스로마시대  → 중세시대  → 르네상스 종교개혁기  → 근대사회  →  현대사회

 

 

1. 고대사회의 여가

 

 문명 이전 사회의 삶에 있어 인간의 주된 관심사는 생존이었다. 고대 인류에게 있어 현대적 의미의 여가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노동에 집중했다.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뚜렷한 구분은 고대사회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노동과 여가활동은 뚜렷한 분절 없이 혼합되어 있었다. 크라우스(Kraus)에 따르면, 원시시대 사람들은 일과 여가를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았으며, 명확한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여가라고 불리는 많은 활동들은 그 당시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현대적 의미의 여가라고 볼 수 있는 당시의 놀이와 여가활동들은 생존을 위한 기술과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낚시, 사냥, 스키, 보트, 수영, 말타기 및 도자기 공예 같은 예술활동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중 많은 활동들은 후에 문명의 기본바탕으로 발달되었다. 

 고대사회의 여가는 노동시간 중 휴식을 취하거나 또는 의식주에 참가하는 정도의 적은 부분을 차지했다. 노동과 여가가 밀접하게 생활 속에 혼합되어 있었다. 또한 상품생산과 가정생활,자녀교육,의례,애정적 표현, 음악, 춤, 사회질서의 유지와 같은 활동 간에도 분명한 구분이 없었다. 여가는 노동의 가치창조와 결합되어 놀이의 단순한 자기표현으로 인식되었고, 노동인 동시에 놀이의 형태를 띠었다. 

 여가는 고된 노동으로부터 일탈한 형태의 휴식이라고 보기는 어려웠고, 의례적 성격의 정형화된 활동에 참여하는 것 등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의례의 참가는 참가자들에게 여가 혹은 잔여시간으로 간주되기 힘들었고, 일상적인 삶의 부분일 수밖에 없다. 고대사회 인류의 삶은 노동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어 히브리 전통에 영향을 받았던 국가들에 있어서는 안식일 제도가 존재하기는 했었지만, 여가의 날이라기보다는 의례적인 활동과 억제의 날이었다. 

 고대사회에서 일과 여가는 현대 산업사회보다 훨씬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마오리(Maori)문화에서는 모든 경제적 삶이 레크리에이션 요소와 어우러져 있었다. 고기를 잡든, 새 사냥을 하든, 경작을 하든 혹은 집을 짓든 대부분의 활동들은 놀이문화로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웃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아프리카 부족생활에서 부락민들은 일정한 시간에 맞춰 여가를 즐기는 것이 아라 일상생활의 의무로부터 벗어난 시기에는 자유롭게 아무 때나 여가를 즐겼다. 부족생활에서 생일, 착수식, 결혼 혹은 사망과 가은 일로 인한 의례는 극히 종교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으나, 축제나 춤 혹은 음주는 단조로운 일상생활로부터 벗어난 휴식이며 여가였다. 당시의 경제활동, 의례적 활동, 종교적 활동 그리고 여가활동은 현대사회와 달리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명확한 구분 없이 혼합되어 존재했다. 

 고대시대 역사적 문화의 대표적인 이집트 문화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은 이집트인들의 무덤이나 비문과 같은 유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집트인들의 계급체계는 잘 발달되어 있었는데, 하류층들은 운동경기 및 신체적인 스포츠 활동과 같은 동적이고 능동적인 여가활동에 참여했고, 상류층들은 게임과 같은 정적인 여가활동에 참여하였으며, 보다 수동적인 여가활동을 즐겼다. 이집트인들이 즐겨하던 게임으로는 바둑 및 주사위 놀이가 있었고, 레슬링 경기, 복싱경기, 투우 등을 즐겼으며, 어린이들은 공기놀이 ,공놀이,텐핀즈와 같은 놀이들을 즐겼다. 

  

이처럼 산업사회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여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여가나 자기 선택에 의한 여가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노동이나 구조화된 활동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결혼식,세례식,생일,축제 등의 행사는 의무적인 성격과 함께 어느 정도는 여가활동으로서 기능도 갖고 있었다.

 원시사회에 있어서 여가가 가졌던 주요한 기능

 

첫째, 쾌락적·향락적인 효력과 함꼐 회복의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둘째,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 간 또는 쌍방의 안전과 결속을 조정하는 효력과 동시에 갈등과 침해, 적대성 등 강한 감정의 탈   출구 역할을 하는 치료적, 승화적 기능을 지녔다.

 

셋째, 개혁과 자기표현을 지향하는 창조의 기능을 지녔다.

넷째, 어린이와 어른 간의 학습과 관습형성을 조장하는 전달적 기능을 지녔다.

 

2. 그리스 ·로마시대의 여가

 

' 문화의 최초 형식은 농경문화였다.' 생존방식이 유목문화에서 농경문화로 변화하자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었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게 되면서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농경의 발달로 사람들은 안정적인 생활을 누렸고,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거나 식량을 비축하는데 예전만큼 에너지의 전부를 쏟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다른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러한 다양한 활동들이 문명의 발달을 가져왔다.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각 사회에서는 문명과 농업을 위한 재산권을 만들게 되었다. 정착생활 이전에는 개인이 재산을 소유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고, 식량이 발견되는 곳에서 사냥을 하고 채집을 했다. 농경시대에 접어들면서 농작물을 생산하는 데 있어 사유재산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동의 분화가 발생하였고, 엘리트 지배계급이 출현하였다. 계급의 분화가 뚜렷해지면서 관리계급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운영했고, 군인들은 토지를 보호했으며, 소작농들은 토지를 경작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형태의 사회조직이 생겨났다. 인간은 잉여상품을 생산하게 되었고, 생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계급이 생겨났다. 토지소유주, 관리계급 및 예술가들은 유한계급으로 노동계급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생활을 유지했다. 

 농경사회생활에서 시간의 개념이 변화했는데, 시간은 규칙적인 생활을 정하는 영역이 되었다. 사람들은 점차 그들의 생활을 계절의 변화를 늦추는데 맞추어갔다. 농작물을 심어야 하는 시기에 사람들은 농작물을 심었고, 수확의 시기가 오면 수확을 하였다. 여가시간과 여가활동은 가을 추수감사제와 같은 축제기간에 행해졌다. 수확시기에 가장 큰 축하의식에는 게임,음식,춤,사교적 모임, 의식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농사일이 한가한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은 많은 여가시간을 가졌다. 

 

1) 그리스시대의 여가

 

 여가가 자유시간 이상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사고는 고대 그리스시대에서 비롯됐다. 그리스시대의 여가관은 단순히 '자유시간'이라기보다는 자신을 훈련하고 경작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그리스어의 'scole'의 원의미는 '멈춘다'혹은'그치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평화와 정적을 갖는다는 뜻이었다. 이후에는 남는 시간을 의미하게 되었고, 특별히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스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여가는 삶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며, 일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여가는 의무감 없이 행해지는 진지한 활동이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의 일도 본질적인 의미의 여가가 될 수는 없으며, 여가는 일과 관련된 어떠한 것과도 관계가 없다고 강론했다. 또한 우리가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여가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여가를 소유하기 위해 비여가적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일 때문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활동은 노동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오락이나 레크리에이션마저도 일 때문에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한 여가가 될 수 없다. 진정한 여가란 모든 활동이 여가 그 자체와 여가목적만을 위해 수행되는 상태인 것이다. 여가는 철학과 예술에 관련된 행동양식으로 간주되면서 다른 활동과 구분되었다.

 여가는 그 자체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고 덕과 선을 함축한 인간의 성격 계발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가는 그 자체 속에 본래의 즐거움,행복,덕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여가는 지적계발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 주고, 영혼의 안식을 위한 방법을 제공해 주며, 인생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의미를 지녔다. 

 그리스시대의 여가관은 광의적으로 자유인의 개념에 기초를 두어 여가를 자유인의 삶의 기초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가로서 간주되는 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음악과 명상만이 여가의 자격을 갖춘 활동이었다. 그 중에서도 명상을 모든 인간적인 활동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여가행위로 간주하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둘 다 여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여가 자체가 목적이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의미의 중심적 요소라고 강론했다. 플라톤은 사색과 명상,철학,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은 행복을 위해 필요하며, 이러한 시간이 곧 여가라고 했다. 즉 여가는 자아계발과 표현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가는 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며 여가계급은 올바르고 현명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지지되며 가장 고귀한 인간활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스시대의 여가관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 비로소 여가적일 수 있으며, 오직 좋은 국가만이 시민에게 진정한 의미의 여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가의 삶은 그리스시대의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삶이었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여가가 시간이 자유로울 때 향유하는 것이므로 개개인에게 여가기회 및 시설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국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조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독특한 여가윤리를 발전시켰으며, 공공여가시설의 건설을 통하여 공공적 여가가 성행하였다. 

 그리스인의 여가관은 '자신과 환경의 조화를 유지한다'는 목표 속에서 나름대로의 가치 있는 생활, 자기수련을 위한 학문, 철학추구적 성격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에게 중요한 여가는 정치, 철학, 교양활동이나 학문, 미술, 취미활동 혹은 종교 ·문화적 행사로서 제우스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축제,경기대회나 올림픽 같은 정기적인 제례의식, 행사참여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스시대 올림픽 같은 정기적인 제례의식, 행사참여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스시대 올림픽 경기에는 도보경주, 레슬링, 권투, 이륜마차경주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규모의 스타디움과 체육관이 각종 체육활동을 유치했으며, 노천 원형경기장은 음악과 춤 그리고 축제의 장으로 이용됐다. 학술원에서 지적이고 미학적인 활동이 있었으며, 포럼에서는 시민토론회가 열렸다. 공중목욕탕이 기분전환과 휴식을 위해 설치되었다. 그리스인들의 여가는 자아계발과 표현을 위해 정치적인 뒷받침 속에서 발전되었다. 그들의 다양한 여가활동은 노동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신만을 위해 활용되는 시간이었다. 이는 여가의 다양한 구조 속에서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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